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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비블로스, 사람들은 왜 기록을 할까?

둔필승총 鈍筆勝聰

鈍(둔할 둔) 筆(붓 필) 勝(이길 승) 聰(귀 밝을 총), ‘둔한 기록이 총명한 머리보다 낫다’는 의미의 사자성어입니다. 다산 정약용이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으라’며 기록하는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남긴 경구기도 합니다. 

굳이 다산의 비유를 들지 않더라도 기록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는 정말 많습니다. 위대한 발명가, 기업의 CEO 등 성공한 이들의 상당수가 ‘메모’를 성공의 비결로 꼽고 있는데요. 이들은 하나같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면 바로 기록을 해  남겨두어야 한다고 조언을 합니다. 또, 자신의 목표와 계획을 노트에 정리해두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데요. 삶의 중심을 바로잡고 계획한 대로 자신의 일상을 이끌어줄 수 있는 것이 다름 아닌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호모 비블로스, 기록하는 인간

기록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비블로스 (homo biblos)’말처럼 기록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본능이자 욕구입니다. 모든 인간은 원하든 원치 않든 매 순간 자신의 흔적을 남기며 살아갑니다. 고래나 사슴을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구석기시대 암각화부터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한* 핫플의 SNS 인증샷에서 볼 수 있듯 인간은 기록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 인스타그램(Instagram)과 할 수 있는(-able)의 합성어로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이라는 뜻의 신조어

기록은 또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중요한 도구기도 합니다. 자신의 소소한 일상과 생각을 써 내려간 일기를 보며 사람들은 지난날을 회상하고, 과거에 했던 실수를 돌아보며 각성의 시간을 갖게 되지요. 감정적으로 힘들거나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서 기록은 최고의 치유의 경험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혼자만의 생각을 차분히 글로 기록을 하게 되면 자신의 마음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또, 글을 쓰면서 미처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동안 간과했던 소소한 행복을 재발견하기도 하지요. 기록 전문가들은 책에 있는 좋은 구절을 옮겨 적는 기록만으로도 마치 명상을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개인적인 욕구나 목적 외에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도 기록을 적극 활용해 왔습니다. 모두가 꼭 알아야 할 새롭고 의미 있는 소식을 다루는 미디어부터 후대에 선대들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알리기 위해 남기는 역사적 기록물까지 기록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인류의 역사와 기록 매체의 진화

사실 ‘기록’은 인류의 역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역사 시대 (written history or recorded history) 자체가 문자로 기록되어 문헌상으로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역사를 말하지요. 반면에 마땅한 기록이 없어 고고학적인 방법, 가령 유물 등을 사용해 알아낼 수 있는 시대는 선사 시대로 칭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기록의 역사는 기록 매체의 역사와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인류의 최초의 기록 매체는 다름 아닌 인간의 두뇌였습니다. 모든 정보와 지식은 인간의 두뇌의 해마(海馬)에 기록되어 기억으로 남게 되는데요. 하지만 너무도 잘 아시다시피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되거나 또 사라져 버리지요. 

시간의 힘에 서서히 굴복하는 기억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해 인류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기억을 기록으로 전환해 나갑니다. 이러한 기록 매체는 흥미롭게도 인류의 삶을 바꾼 새로운 기술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 로마 문명을 꽃피운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부자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양피지, 인류의 정신문명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은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인 종이 등이 바로 그것이지요.

종이 기반의 기록에서 디지털 기록으로의 전환

종이와 활자를 기반으로 하는 아날로그 매체는 아주 오랫동안 기록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하지만 컴퓨터의 탄생으로 종이 기반의 기록 저장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게 되지요. 디지털 정보 처리 방식으로 방대한 양의 정보를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저장하고, 검색하고, 수정하며 또 공유할 수 있는 컴퓨터로 인간의 기록의 역사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됩니다. 

전화를 자동으로 기록하는 AI 앱 스위치

1세대와 2세대 기록 매체인 종이와 컴퓨터의 뒤를 이은 새로운 기록 매체는 바로 AI입니다. 1950년대 처음 등장한 개념인 인공지능은 현재 놀랄만한 속도로 발전하며 우리 삶의 곳곳을 바꾸어 놓고 있지요. 기록 분야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제는 사람이 텍스트를 직접 입력하는 대신 AI가 음성을 인식해 기록을 대신해 주는 편리한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는데요. 바로 AI 전화가 통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저희 스위치가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겠네요. 

새로운 기록 트렌드

앞서 언급된 것처럼 기록은 인류 역사와 과학 기술의 발전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록은 또한 인간의 역사를 이루는 근간임과 동시에 한 사회를 판단하는 수단으로 막강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기록을 생산하고 선별하는 과정에서 그 사회의 지식인이나 지배 계층의 판단이나 이해관계에 좌지우지될 여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기록은 한때 그 자체로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록 매체의 대중화와 디지털화와 함께 기록은 더욱 개인화되고 세밀해지고 다채로워졌습니다. 각각의 개인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의 삶과 생각, 그리고 취향을 매체에 자유자재로 기록하는 시대가 온 것이지요. 이제는 굳이 거창하고 진지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누구나 기록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일상을 기록하거나, 함께 인사이트를 기록해서 나누고, 지식을 공유하는 인스타그램의 모습 (출처 : hip.servie,ppo.sic 인스타그램)

이러한 트렌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SNS가 아닐까 싶은데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SNS에는 개인들이 제작한 셀 수도 없이 많은 기록 콘텐츠가 업로드되고 있지요. 이러한 기록 콘텐츠는 자신의 하루를 반추하는 일기, 여행지나 인상 깊었던 방문 장소를 인증하는 사진과 영상, 반려동물과의 일상, 쇼핑 하울과 언박싱, 좋은 글귀와 책 내용을 나누는 리뷰, 특정한 사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남기는 인사이트 피드 등의 형태로 다양합니다. 

최근에는 본 계정 외에 다른 계정에 자신의 여러 취미와 관심사를 따로 분류해 업로드하는 부계정, 마치 클라우드나 드라이브처럼 하나의 계정을 여러 명이 함께 관리하고 게시물을 업로드하며 사용하는 ‘공유 계정’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SNS를 통해 기록을 남기는 트렌드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구글에서 직장인 브이로그(Vlog) 검색 결과 (출처: youtube의 많은 유튜버)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에 가고 운동을 하고 취미 생활을 즐기는 자신의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영상으로 생생하게 기록하는 브이로그 (Vlog)도 인기입니다. 브이로그(Vlog)란 ‘비디오(Video) + 블로그(Blog)’의 합성어로, 블로그에 글이나 사진으로 일상을 기록하던 콘텐츠가 영상 형태로 변화한 것입니다.

마치 일기를 쓰듯 자신의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이유는 영상을 친구나 지인과 공유하거나 일상을 기록하고 추억하기 위해서인데요. 브이로그를 만드는 사람도 또 시청하는 사람도 대부분 평범한 일반인이라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그만큼 일상의 기록 자체가 흥미롭고 매력적인 콘텐츠가 된 것이지요. 여기에 영상 특유의 직관적인 메시지와 생동감 넘치는 표현 방식에 사람들은 더 쉽게 공감하고 친근감을 느끼게 됩니다. 

인스타그램 #영감노트 해시태그, 마이루틴을 통한 루틴 기록 및 공유, 틱톡에서의 챌린지 기록

기록을 통해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유대를 강화하려는 시도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책 속의 글, 광고 문구, 좋아하는 브랜드, 가고 싶은 장소에서 얻은 영감을 기록하고 다른 멤버들과 함께 나누는 기록 커뮤니티, 업계 동료들과 읽고 배운 인사이트를 정리하며 커리어 프로필을 만드는 기록 습관 챌린지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특정 커뮤니티에 소속되지 않고도 독서, 명상, 운동, 다이어트 등 자신의 루틴을 ‘○○챌린지 ○○일차’ 기록 형태로 남기는 방식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자신의 루틴의 결과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했을 때 더 큰 성취감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제텔카스텐 기록 방법

기록은 또한 다양한 디지털 툴과 결합, 새로운 지식과 정보 관리 방법으로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제텔카스텐 (Zettelkasten) 메모법인데요. 독일어로 ‘종이 상자’를 뜻하는 제텔카스텐은 독일의 사회학자인 니클라스 루만 (Niklas Luhmann) 교수가 고안한 지식 관리 방법입니다. 여러 생각을 연결하는데 아주 탁월한 기록 방식입니다. 루만 교수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책을 읽을 때마다 작은 인덱스 카드에 하루 평균 6개의 메모를 하고 종이 상자에 분류해 놓았는데요. 이 방법으로 평생 60권 이상의 책과 수백 편의 논문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그의 사후에도 종이 상자에 남아 있는 메모들을 기반으로 많은 책을 출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Roam Research 롬 리서치 (출처: https://roamresearch.com/)

루만 교수의 제텔카스텐 메모법을 오프라인 방식으로 사용하려면 인덱스 카드와 종이와 펜을 늘 휴대해야 할 텐데요. 이러한 번거로운 없이 생각과 사고를 네트워크 형태로 연결해 주며 탁월한 백 링크 기능을 보유한 롬 리서치 (Roam Research), 옵시디언 (Obsidian), 노션 (Notion) 등의 스마트 노트 앱으로도 제텔카스텐 메모 방법을 활용해 볼 수 있답니다. 

최근의 기록은 업무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에도 기록 습관은 성공의 지름길로 빈번하게 언급되었습니다. 하지만 AI 기술의 대중화, 인터넷과 모바일 플랫폼의 통합, 기록 툴과 워크플로우와의 결합 등 점점 더 혁신적인 기록 서비스가 출시되면서 효율적이고 신속한 기록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텍스트나 이미지 기반의 기록 프로그램인 에버노트, 원노트, 노션 등은 물론이고, 저희 스위치처럼 AI가 전화 통화와 온라인 미팅 내용을 음성인식 기술을 통해 알아서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정리해 주는 서비스로 인해 기록 방식은 또다시 획기적인 도약을 맞이하고 있는 중입니다.

기록의 미래

실시간 통계 사이트 ‘Worldometers’에 따르면, 하루 평균 2,100억 개 이상의 e-mail이 발송되고 미국의 abc, NBC, CBS 3개 방송사가 10년간 방송 분량만큼의 동영상이 매일 유튜브를 통해 업로드됩니다. 현재 우리가 하루 동안 접하는 정보의 양이 100년 전 사람들이 평생 습득했던 정보와 맞먹는다는 놀라운 조사 결과도 있지요. 

이러한 디지털 혁명으로 촉발된 ‘정보 폭증의 시대’에서 더욱더 중요해지는 것이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신속하게 또 효율적으로 담아내는 기록 능력이 될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부터 전화 통화 내용을 AI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로 기록하는 저희 스위치에 이르기까지, 보다 효과적으로 사람들의 기억을 기록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진화한 기록 방법. 앞으로 또 어떠한 혁신적인 기술이 호모 비블로스의 성공적인 기록을 돕고 새로운 기록의 패러다임을 제시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